미국 후딱 한바퀴 (6)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디모인에서 오마하까지는 80번 하이웨이를 타면 2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하지만 여행의 맛을 살리기 위해 92번 지방도로를 탔다. 그 선택이 옳았다.
92번 도로에 오르자 '존 웨인 생가(John Wayne Birthplace Museum)' 표시판이
눈에 들어왔다. 매디슨 카운티의 군청 소재지인 윈터셋(Winterset)이 서부 영화의
대명사인 존 웨인의 고향이었다. 계획에 없었던 곳이었지만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용한 읍내에 들어서자 얼마 가지 않아 아담한 존 웨인 박물관이 눈에 들어왔다.
서부 영화에 나올 법한 붉은 황토색 건물이 생가 터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박물관 입구 바닥에는 존 웨인이 출연했던 영화 제목이 새겨져 있었다.
그의 출세작 '역마차(Stagecoach)'도 보였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려니
개장 시간이 막 끝나버렸다나. 5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아쉬웠다.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사람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뉴욕에서 왔다고 하니 자신은 70세가 되도록 뉴욕을 못 가봤다며 넋두리를 했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이 아저씨는 1마일은 가야 이웃이 있는 캔자스주 시골 출신이었다.
미국의 시골사람 중 뉴욕과 워싱턴을 못 가본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났다.
이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90년대 말 영화 팬들의 심금을 울렸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The Bridge of Madison County)'의 촬영지가 인근에 있으니 가보라고 알려줬다.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출발했다. 10분 정도를 달리니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느릅나무 길(Elmwood Ave).' 영화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 로버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낡은 픽업을 타고 뽀얀 먼지를 날리며 달리던 그 길이었다.
전봇대를 스치고 맑은 연못을 지나니 영화 장면이 현실로 되살아나는 듯했다.
괜스레 마음이 설레었다. 로버트가 농촌 주부인 프란체스카를 우연히 만났을 때
느꼈을 것 같은 설레임이었다. 황량한 들판을 3분여 달리니 허름한 시골집이 보였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가 저녁을 함께 하면서 사랑을 나누었던 그 집인가 했더니 아니었다.
실망을 한 채 좀 더 달리니 '로즈먼 다리 길(Roseman Bridge Road)'이 나타났다.
좌회전을 했을 때, 벌판 저편에서 어린 사슴이 이 쪽을 잠시 쳐다보더니 벌판을 가로 질러
순식간에 사라졌다. 낯선 손님을 본 시골 아이가 이를 알리려 집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사슴이 프란체스카의 환생이거나 혼령은 아닐까?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사슴이 달려간 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조그만 교회가 있었고
바로 이어 로즈먼 다리가 저만치 보였다. 첫 느낌은 휑했다.
더 이상 차가 다니지 않아 방치해 놓은 시골 다리일 뿐이었다.
좀 앞서 온 건장한 바이크족 5명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들도 소울 메이트를 찾아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먼 길을 달려온 것일까?
일생에 단 한번만 느낄 수 있는 짧지만 확실한 사랑을 갈구하면서? 수백억년이나
되는 우주의 시간에서는 사흘 간의 사랑이나 백년 간의 사랑은 별 차이 없을 테니.
이들은 소울 메이트의 흔적이라도 찾고 싶은지 다리 위를 몇 차례나 오고 갔다.
다리에 조금 못 미쳐 떡갈나무 숲 사이로 통나무 집 선물가게가 눈에 띄었다.
이 가게가 없다면 이 곳이 사랑을 가슴에 묻은 로맨티스트들이 한번은
꼭 찾고 싶어하는 명소인지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영화 속의 로버트가 화보용으로 촬영했던 로즈먼 다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차가 다니지 않는 외로운 다리였다.
안내판이 을씨년스럽게 이 다리의 내력을 말해주고 있다.
영화팬들의 발길이 뜸해진 이 다리는 로버트가 떠난 뒤
프란체스카처럼 외로움을 감내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로버트가 프란체스카에게 선물할 들꽃을 꺾었던 다리 밑을 서성거렸지만
연인들의흔적은 상상 속에서만 어른거릴 뿐이었다.
영화에서 맑게 흘렀던 시냇물은 울적한 마음처럼 흐려있었고
윤기가 났던 풀들은 오랫동안 빗질하지 않은 머리털같은 잡초로 변해있었다.
단단한 나무다리를 뚜벅뚜벅 걸어 기하학적으로 짜여진 덮개 속으로 들어갔다.
주인 없는 집 안으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주인을 만나지 못한 방문객들이 제멋대로 남긴 무수한 낙서가 이방인을 맞이했다.
프란체스카가 저녁 초대편지를 꽂아두었던 곳을 괜스레 살펴보고는
오마지 않은 사람이 다리 저 편에서 불쑥 나타나지나 않을까 고개를 몇 번이나 돌려봤다.
환상이 보인 것일까? 다리 저만치서 프란체스카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머리 스타일과 몸매가 비슷했다. "영화 주연인 메릴 스트립이 온 것은 아닐텐데"하면서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봤다. "그러면 그렇지."
인근 선물 가게 주인인 듯한 중년 여성이 다리를 건너 어디론가 가는 길이었다.
해거름에 찾은 여행객이 선물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
소울 메이트를 찾고 있으니 가게 문을 일찌감치 닫고 집으로 가는 것 같았다.
이제는 우리만 남았다.
"저 먼지는 다리 위에 뿌려진 프란체스카의 유골이 아닐까?"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로버트가 사진 촬영을 위해 오갔던 그 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숲 속으로 난 길에는 사슴 한 마리가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이 쪽을 바라고 있었다
얼마 전 이 이방인을 보고는 달아났던 바로 그 어린 사슴이었다.
로버트를 잊지 못해 프란체스카가 환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또다시 들었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하염없이 이 쪽을 바라보고 있는 저 사슴이
그저 아무런 감정 없는 동물로 여겨지지 않았다. 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그저 허구적인 소설과 영화의 소재였을 뿐이라고 여길 수 없는 것처럼.
사실 미국 일주를 계획할 때부터 이 다리가 머리에 맴돌았지만 방화로 소실됐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일정에 넣지 않았다. 하지만 2002년 소실된 것은 지난 1883년
같은 디자인으로 인근에 세워진 시더 다리(Cedar Covered Bridge)였다.
로즈먼 다리와 유사한 다리는 매디슨 카운디 뿐 아니라 미국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그 어떤 다리도 로맨티스트 마음 속에 자리잡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대체할 수는 없으리라.
이영화가 제작된 것은 지난 1995년.
감독이자 주연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당시 65세의 장년(?)이었다.
"장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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