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즈벨트의 고향, 하이드파크
영국 런던의 하이드파크가 자기 주장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명소라면 뉴욕주의 하이드파크는 미국 사회보장제도의 산실이다. 연금제도를 도입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고향마을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어렵사리 도입한 국민의료보험 마저 폐기 위기에 처한 사회복지의 후진국인 미국의 시니어들이 그나마 인간답게 사는 것은 루즈벨트 대통령 덕분이다.
소아마비와 싸우며 국민의 품위있는 삶을 생각하다
요즘 ‘공돈’이 들어온다며 즐거워하시는 선배들을 가끔 만난다.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몇 백 달러씩 연금이 날아오니 용돈이 아쉽지 않다고 한다. 젊은 시절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신 분들이 미국 정부로부터 받는 연금이다.
몇년간 근무하면서 사회보장세를 납부한 덕분이다. 쪼들리는 해외생활을 하면서 강제라 할 수 없어 낸 것이 예상치 않게 평생 효자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국민연금을 도입하기 53년 전, 미국이 만든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의 혜택을 한국에서도 받고 있는 셈이다.
미국 경제가 대공항의 수렁에 빠져 있던 1935년,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이 법을 밀어붙인 지도자는 미국의 32대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대통령. 정부가 세금으로 복지혜택을 주는 것을 사회주의적 발상으로 여겼던 극단 자본주의 시절, 은퇴자나 노약자에 대한 연금 지급은 용납되기 어려웠다.
우리가 1988년 국민연금제를 처음 도입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루즈벨트대통령은 사면초가였다. 뜬금없이 엄청난 사회보장세를 부담해야 하는 GM과 같은 대기업은 말할 것 없고 공산주의적 행태라고 몰아붙이는 정치인에다 노후도 좋지만 당장 늘어나는 부담이 싫은 근로자까지 모두 반대했다.
여기에다 연금 대상에서 제외된 자영업자, 농민, 10인 이하 영세기업의 근로자들은 ‘신분 차별’이라며 들고 일어났고 정부가 연금을 탕진해 버릴 것이라는 우려까지 제기됐다.
루즈벨트는 확실한 신념이 있었다. 정부는 열심히 일한 노인이나 병약한 국민에게 품위 있는 삶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믿음이었다. 기업주와 근로자가 임금의 2.5%씩을 납부하여 65세 퇴직 후 연금으로 받도록 하는 사회보장제의 틀을 짜 설득에 나섰다.
정부가 이를 기금으로 비축하여 은퇴자와 실업자, 노약자들에게 연금으로 지급해 노후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로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성공했다. 부담비율이 임금의 6.2%씩으로 높아지는 등 일부 수정은 됐지만 지금도 그 때의 기본 틀이 유지되고 있다.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가 부여돼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처럼 사용된 것도 그 때부터다.
올해 미국의 사회보장 연금 규모는 9000억 달러로 국내 총생산(GDP)의 5% 수준. 6300만 명에게 월 1200달러 정도의 혜택이 돌아간다.
<사회보장법 80주년 기념 배너가 휘날리는 생가>
미국 시니어 90% 사회보장연금 받아
65세 이상 시니어 10명중 9명이 사회보장연금을 받는데 그들 총수입의 38%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기혼 신중년 중 22%와 싱글 신중년 중 47%는 수입의 90% 이상을 사회보장연금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 2015년 8월 루즈벨트 대통령의 고향인 하이드파크에서 사회보장법 서명 80주년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린 것도 미국인들의 사회보장제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유복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하버드와 콜롬비아대학을 나와 변호사, 뉴욕주 상원의원, 해군차관, 부통령후보, 뉴욕주지사, 그리고 대통령으로 거침없이 내달은 루즈벨트의 이력에서는 이처럼 미국인들의 노후와 약자를 위해 정치 생명을 걸만한 배경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력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그의 인생 역정을 살펴봐야 알 수 있다. 재혼한 아버지와 젊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루즈벨트는 어린 시절 건강하지도 활달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씩씩하게 키우려 애를 썼고 젊은 어머니는 극성스러울 정도여서 홈스쿨링을 하다 14세가 되어서야 기숙학교로 보냈다. 그 후 루즈벨트는 모든 운동을 좋아하는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해 나갔다.
무엇보다 루즈벨트의 인생과 정치철학에 영향을 준 것은 부통령으로 출마했다 낙선하고 39세에 척수성 소아마비에 걸려 하반신 불구가 된 사건이었다. 아름드리나무가 늘어선 고향집 자갈길을 보조기구를 끌면서 억척스레 걷고 또 걸었으나 끝내 스스로 일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정치적 열정은 더 강해졌고, 식견은 더 넓어졌다. 비서와의 염문으로 멀어졌던 아내, 엘리노 루즈벨트와의 관계도 오히려 회복됐다.
루즈벨트 여사는 그 때부터 전역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심금을 울리는 연설을 하면서 남편을 뉴욕주지사와 4선 대통령으로 일으켜 세웠다.
루즈벨트 여사는 정치적 동지…발킬별장엔 세계정치인의 발길이
1945년 루즈벨트 대통령이 서거한 후, 루즈벨트 여사가 머물렀던 발킬별장(Val-Kill Cottage, 루즈벨트 생가에서 4㎞ 거리에 위치)에는 흐루시초프 소련 수상, 티토 유고연방 대통령, 네루 인도 수상, 케네디 대통령 등 세계 지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엘리노 행정부’, ‘세계의 영부인’, ‘세계의 인권대사’ 등 많은 호칭은 루즈벨트 여사의 활약상을 말해주고 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루즈벨트가 소아마비를 앓지 않았다면?’, ‘엘리노와 이혼을 했다면?’ 세계 역사는 많이 달라졌고 지금 같은 미국의 사회보장제는 없었을 것이라고 사학자들은 말한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태어나 성장하고 정치적 기반을 다진 곳은 뉴욕주. 뉴요커(New Yorker)들은 지금도 그를 마주치지 않고는 하루도 지내기 어렵다.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그가 세계 평화를 영원히 지키기 위해 기초한 국제연합(United Nations, 유엔)의 본부가 위치한 맨해튼 이스트(East) 강변. 서울 한강의 올림픽대로 같은 이스트강변의 순환도로가 루즈벨트 대통령 이름의 약자인 ‘FDR Drive’이다.
이 도로를 타고 가다 이어지는 허드슨(Hudson) 강변길을 북쪽으로 1시간 반 정도 달리면 루즈벨트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하이드파크(Hyde Park)에 닿는다. 루즈벨트는 지치고 힘들 때면 생가인 스프링우드(Springwood)를 찾았다.
미군 육군사관학교가 자리한 웨스트 포인트(West Point)를 지나는 강변의 절경과 생가까지 길게 이어지는 아름드리 가로수는 어떤 시름도 사라지게 할 만 했다. 철도왕 반더빌트의 별장을 비롯한 저택들이 즐비한 허드슨 계곡은 재충천하는데 천혜의 입지였다.
하루 은퇴자 1만명 시대, 새로운 파라다임 찾아야
미국은 하루 은퇴자 1만명 시대를 맞고 있다. 800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세대(1948~1964년생)들이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사회보장세의 유입보다 연금 지출이 이미 더 많아졌다. 현재 추세라면 2조7000억 달러 규모인 사회보장연금 기금은 2034년에 바닥이 나고 2033년에는 2.1명의 근로자가 은퇴자 1명의 연금을 책임져 줘야 한다.
60% 이상의 미국인들은 사회보장제를 지키기 위해 세율 인상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도 주요 이슈가 되었다.
세율을 20년에 걸쳐 1% 포인트 올리는 방안, 연 11만8500달러로 제한된 소득상한제를 없애 고소득자로부터 세금을 더 걷는 방안 등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은퇴연금 수령연령이 65세에서 67세로 매년 2개월씩 늦춰지는 등 여러 여건을 감안하면, 은퇴자의 삶은 팍팍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생전에 생가 부지에 세운 도서관에는 사회보장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5만1000권의 장서와 1700만 페이지에 달하는 생생한 자료를 접하면서 미국인들의 더 나은 노후생활을 모색하는 노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공항에 빠진 경제를 살리고, 2차 대전을 승리를 이끌면서 복지사회를 꿈꾸었던 루즈벨트 대통령으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뉴욕사람들은 성지순례 하듯 가족과 함께 국립역사유적지로 지정된 루즈벨트의 생가와 묘지를 찾곤 한다. 그의 인간미와 불굴의 의지를 생생히 되새기면서 심신을 다잡는 연례행사처럼 느껴진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듣고 “언젠가 이 세상과 역사는 그에게 큰 신세를 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한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의 말이 70년이 지난 지금도 바로 와 닿는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 뿐”이라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명언은 난마와 같이 얽힌 삶을 헤쳐 나가는 우리 모두에게 등불이 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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