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후딱 한바퀴 (5) 철지난 정치도시, 디모인



4일차의 주요 기착지는 아이와주의 수도인 디모인(Des Moines)과
워런 버핏의 도시인 네브라스카의 오마하(Omaha)다.
시카고 시내를 빠져나와 30번 국도를 타고 서쪽으로 곧장 달렸다.


세계 최대 곡창지대인 프레리(Prairie) 대초원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옥수수와 콩 외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대평원을 1시간 남짓 달리니
대관령에서 보았던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늘어서 있었다.


높이가 100m는 됨직한 풍력 발전기가 미국을 방황하는 돈키호테를 풍차 대신 맞이했다.
풍력 발전의 거점인 '록폴즈(Rock Falls)'로 가는 길에는 거센 바람이 붙었다. 이 바람 덕분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옥수수 밭과 풍력 발전기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에너지 정책이 바뀌고 있지만
재생 에너지의 확산 추세를 거슬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 여행을 하면 신경 쓰이는 것이 엔진 오일 교체다. 인적이 드문 내륙을
달리다 보면 정비소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골 읍내 같은 록폴즈의 다운타운에 
들어서니 '쉬라이너(Schreiner)'라는 정비소가 눈에 띄었다. 반가웠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흥겹게 작업을 하던 정비공들이 우리를 보고는 '강남스타일'로
곡목을 갑자기 바꾸었다. 먼 길을 달려온 이방인을 환영하는 마음 씀씀이가 감독적이었다.
한국인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 이 지역에는 거의 백인들만 살고 있는데...


엔진 오일을 바꾸자 자동차는 한결 매끄럽게 달렸다. 40여분을 달리니
일리노이주 경계와 아이와주 클린턴시의 표지판이 나타났다. 세계에서
4번째로 긴 미시시피강이 일리노이주와 아이와주를 가라 놓은 지점이었다.


인디언의 말로 '큰 강'이란 뜻의 미시시피강을 건너니
허클베리 핀이 타고 떠났을 법한증기선이 우리를 반겼다. 
가까이서 보니 증기선 모양을 한 허름한 식당이었다.


도도히 흐르는 황토빛 미시시피 강물이 하얀 등대와 보트, 그리고 풍광 좋은
레스토랑과 잘 어울려 호기심 많은 여행객의 발길을 끌었다. 미국을 양분하며
남북으로 흐르는 미시시피강은 미국에서는 2번째로 긴 강으로 알려졌다.


미시시피강의 본류는 3,734km로 로키산맥에서 발원한 3,767km의
미주리강에 비해 30km 정도 짧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미시시피강은 지류인 미주리강과 그 위의 제퍼슨강까지 합쳐 6,275km로 통한다.


한 때는 세계에서 제일 긴 강으로 알려졌으나
재측량 결과, 나일강과 아마존강은 물론 양쯔강에도 밀렸다.
강물에 손 담그는 것으로 미시시피강 도하 자축연을 끝내고 발길을 재촉했다.


대평원이 끝없이 이어졌다. 디모인까지 3시간여 동안 끝간데 없는 옥수수와 콩 밭을
달렸다. 저 넓은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곡물을 도대체 어떻게 처리할까? 여행내내 가졌던
의문이 서서히 풀렸다. 대평원 곳곳에서 엄청난 규모의 곡물 저장시설을 볼 수 있었다.


대평원에서 재배된 곡물이 현지 저장시설에서 전용 대형 컨테이너에 실린 후 바로 
연결된 철도와 트레일러로 운송되는 일관 물류시스템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운송된 곡물이 태평양과 대서양 항구에서 배로 옮겨져 세계 곳곳으로 공급될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 종횡무진했던 우리 종합상사가 미국에서 농업에 뛰어들었다가
참담하게 실패한 것도 이런 물류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평원 위에 세워진 비료공장과 가는 곳마다 눈에 띄는 대형 농기계 유통센터를 보면서 
농업을 뒷받침하는 배후 산업이 세계 최강 미국 농업의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도착한 아이와주의 수도 디모인은 조용하고 잘 계획된 도시였다. 
지난 19세기 서부 개척의 중심지였던 이 도시는 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정치 중심지로 돌변하면서 이목을 끌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프라이머리가 이 곳에서 처음 열리기 때문이었다. 
첫 프라이머리는 후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니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투표와 개표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가보고 싶었지만 의미가 없었다. 지금은 평범한 학교와
마을 회관일 뿐이었다. 선거철이 지난 디모인은 철 지난 해수욕장처럼 한산해 보였다.
인디언 말로 '흙 무더기 강'을 뜻하는 흙빛의 디모인강은 무심히 미시시피로 향하고 있었다.


강변에 있는 있는 붉은 벽돌의 '세계 식량상 수상자 홀(World Food Prize Hall of Laureates)'은
이 도시가 세계 농업의 중심지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매년 8월엔 세계 유명 인사들이 
이 곳에 모여 식량난 해결과 식품 품질 향상에 공이 큰 사람을 표창하고 축하하고 있다.


그 때는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 같은 분위기를
여기에서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 도시 어디서나 눈에 띄는 삼각형
지붕 모양의 최고층 빌딩은  보험회사인 'Pricipal Financial Group' 본사였다.


이 건물을 보고서야 디모인이 코넥티컷주의 하트포드(Hartford)와 보험산업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보험 중심지인 것을 알았다.
중소 규모이지만 60여 보험사의 본사와 100여 지역본부가 이 도시에 있다니 놀라웠다.


여기서 멀지 않은 미시시피와 미주리 강이 산업과 물류의 중심이었던 19세기부터 위험을
커버하는 보험산업이 이 곳에서 발달했다. 동부에 비해 생활비와 인건비가 30%나 낮으니
저금리로 이윤이 박해진 보험업계가 이 곳으로 거점을 옮기는 것이 옳은 선택일 수도 있다.


 볼만한 곳이라고는 5개 황금빛 돔의 의사당 밖에 없는 듯했다.
의사당에 올라서니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의사당 전면에는 서부 개척의 
거점이었던 것을 상징하는  '군인과 항해인 동상(Soldier & Sailor Statue)'이 서 있었다.


이런 동상은 미국 곳곳에서 볼 수 있어 이 곳만의 명물이라 하기는 어려웠다.
그 옆에는 이 지역과 별 연고도 없는 '링컨과 태드 동상(The Lincoln & Tad Statue)'이 있었다.
이 지역 출신의 링컨 전문 조각가가 그냥 모금을 해서 세웠다니 좀 생뚱맞았다.


이와 유사한 동상이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에도 세워진 것을 보면 링컨 대통령이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이 화목한 가정과 훌륭한 자녀 교육의 상징인 듯했다.
링컨 대통령의 아들 태드는 18세에 세상을 떠나 당시에는 연민의 대상이었다.



볼거리를 찾아 다운타운에 있는 컨벤션 및 방문객 센터(Great Des Moines Convention &
Visitors Bureau)를 들렀더니 "Catch Des Moines"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창업 지원과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멋쩍어 발길을 돌리는데 새로운 주차기가 눈에 띄었다.


이 미터기는 한번 누리면 15분 간 무료 주차를 할 수 있는 것이 특이했다.
미국에는 미터기 종류도 참 많았다. 다양한 미터기를 제대로 이용할 줄 알면 도심
투어가 한결 수월해질 듯했다. 디모인을 뒤로 하고 네브라스카주의 오마하로 향했다.


뉴튼수도원(흥남 철수의 기적) 순례 및 뉴욕 야경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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